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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전자사전
'훈요십조'에 대한 '용어해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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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3 훈요십조 행정사
내용

훈요십조
 
개념
고려의 건국은 신라와 발해로 양립되었던 남북국 시대를 하나로 대통일 함으로써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가 되었다. 다만 고려의 통일은 영토상으로 고구려의 옛땅을 모두 차지하지 못하였으며 정신적으로도 고구려 계승이식과 신라계승의식의 갈등을 해소 못한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한 한계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비로소 극복되었다.
한편 태조왕건은 지방에 반독립적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호족들을 고려의 신하로 끌어들이기 위해 혼인정책과 사성정책을 썼다. 왕건은 유력한 호족들과 혼인을 맺어 왕후가 여섯이고, 부이이 23명이나 되었다. 귀순해오는 호족들에게 왕씨의 성을주어 많은 호족들을 가족적인 관계로 묶어놓고, 수천명의 호족들에게 공신의 칭호를 주어 포섭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호족의 농민에 대한 가혹한 수탈을 막고 중앙관료로 포섭된 호적들이 새로운 특권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호족에 대한 통제정책을 쓰기로 하였다. 그가 「정계」1권 「계백료서」8편을 지어서 신하들에게 반포한 것은 관리로서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 었다.
왕건은 또한 후대의 왕들이 지켜야 할 10가지 정책 방향으로서 「훈요십조」를 남겼다. 고려의 건국정신이 담긴 이 유훈에는 신라 말기에 유행한 유교, 불교, 풍수지리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주체적이고 도덕적인 부국안민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이러한 정치이념은 궁예나 견훤에게서 찾아 볼수 없는 새로운 사상으로서 왕건 밑에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모여 들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차령이남, 금강이남의 인재를 등용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풍수지리의 관점을 따른 것이라고하지만 아마도 후백제를 통합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훈요십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① 불교의 힘으로 나라를 세웠으므로 사찰을 서로 빼앗지 말 것.
② 도선의 풍수사상에 맞게 사찰을 짓고 함부로 사찰을 짓지 말 것 .
③ 왕위는 맏아들 세습을 원칙으로 하되, 맏아들이 현명하지 못하면 다른 아들중에서 여러신하의 추대를 받아 왕위를 잇게 할 것.
④ 우리나라는 방토와 인성이 중국과 다르므로 중국문화를 반드시 따를 필요가 없으며 거란은 언어와 풍속이 다른 짐승과 같은 나라이므로 거란의 제도를 따르지 말 것.
⑤ 풍수지리사상을 존중하고 서경을 중시할 것.
⑥ 연등의 불교행사와 하늘, 오악, 대천, 용신을 섬기는 팔관행사를 성실히 지킬 것.
⑦ 간쟁을 따르고 참언을 멀리하여 신미의 지지를 얻을 것.
⑧ 농민의 요역과 세금을 가볍게 하여 민심을 얻고 국부안민을 이룰 것.
⑨ 차령산맥과 금강이 남은 산천과 인심이 배역을 끼고 있으므로 그 지방 사람들을 등용하지 말 것.
⑩ 경사를 넓게 읽어서 옛날을 거울삼아 현재를 경계할 것, 등으로 되어있다.
 
태조왕건은 전국의 20여호족들과 혼인을 통하였고 때로는 왕씨의 성을 주어 의제가족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이들과의 연합을 굳게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여러 호족들의 존재는 여전히 태조왕건의 적지 않은 우려의 대상이 였다. 결국 태조왕건은 왕권의 안정을 이루어 놓지 못한 채 자손에 대한 「십순요」만을 남기고 돌아갔던 것이다.
 
저  자 : 장동희
작성일 : 200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