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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통합정책(health insurance integrated policy)'에 대한 '용어해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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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건강보험통합정책(health insurance integrated policy) 정책
내용

 

건강보험통합정책
(health insurance integrated policy)


 

1. 개념

 

  건강보험통합정책(health insurance integrated policy)은 조합방식으로 운영하여 오던 지역건강보험, 직장건강보험, 그리고 공교(공무원 및 교직원)건강보험의 조직 및 재정 통합을 통해 이들을 단일화시키려는 정책을 의미한다.

 


2. 경과

 

  건강보험통합정책의 추진경과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본 추진경과를 통해 건강보험통합정책은 조합주의옹호연합과 통합주의옹호연합 간에 치열한 상호작용이 이어지는데, 결국 건강보험은 조합주의정책에서 통합주의정책으로 변동되게 된다.

 

<표> 건강보험통합정책의 추진경과

일 시

내 용

비 고

1980.10

천명기 보사부장관, 대통령에게 건강보험 통합계획 보고

 

1980.11

청와대, 통합반대 보고서 작성

 

1981.01

천명기 장관, 국회보사위에 단계적 통합방침 보고

 

1981.08

한국노총, 통합찬성 개선요구서 발표

 

1983.03

보사부파동(보사부 내에서 건강보험 통합주의 지지세력이

조합주의 지지세력에 의해 축출된 사건을 의미함) 발생

 

1986.05

민정당, 당정협의회에서 전국적인 통합요구

 

1986.08

경총, 통합반대 건의문 발표

 

1986.10

경제기획원 및 국무총리실, 통합찬성보고서 발표

 

1988.02

진보의료단체와 농민단체 등, 시정운동(전반적인 보건정책의 개혁을 요구하는 운동으로서 건강보험의 통합주의 요구 등이 핵심을 이루고 있음) 시작

 

1988.04

진보의료단체와 농민단체 등, 통합찬성 대토론회

 

1988.06

진보의료단체와 농민단체 등, 전국의료보험대책위 결성

 

1989.03

통합을 골자로 하는 국민의료보험법 국회가결

 

1989.03

노태우대통령, 통합 법안에 거부권 행사

 

1997.11

국민의료보험법 국회가결

 

1997.12

김대중, 이회창 등 양당 대통령후보, 완전통합 선거공약 제시

 

1998.02

제1기 노사정위원회, 의료보험 전체통합합의

 

1998.03

각계대표 및 전문가로 ‘의보통합추진기획단’구성

 

1998.10

지역의료보험조합(227개)과 공교의료보험관리공단(140개)의

조직을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으로 1차 조직통합

1차

통합

1998.12

경실련․참여연대 등, 대표적 시민단체 통합운동에 참여

 

1999.01

직장건강보험까지 통합하는 국민건강보험법 제정안 국회가결

 

1999.02

국민건강보험법 제정․공포(2000년 1월 1일 시행)

 

1999.02

보건복지부에 통합추진반, 보험관리공단에 실무전담반 구성

 

1999.02

국회, 조직통합을 2000년 1월에서 같은 해 7월로 연기

 

1999.03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설립을 위한 설립위원회 설치

 

1999.05

대표적 통합주자 차홍봉씨 보건복지부 장관 취임,

통합에 소극적이던 연금보험국장, 보험정책과장 등이 교체되면서 통합에 가속력이 붙음

 

2000.07

직장의료보험조합(139개)과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의 조직이 통합된 국민건강보험공단 발족으로 2차 조직통합(완전한 조직통합)

2차

통합

2001.01

직장건강보험과 공교건강보험 재정통합으로

1차 재정통합

3차

통합

2001.05

한나라당, 직장건강보험과 지역건강보험 재정분리 개정안

국회 제출

 

2001.05

한국노총․경총․교총․의사협회․자유시민연대 등,

건강보험 재정분리를 위한 법 개정 청원서 국회 제출

 

2002.01

국회, 직장 및 지역 재정통합을 2003년 7월로 연기

 

2003.07

지역과 직장건강보험 재정통합으로

2차 재정통합(완전한 재정통합)

4차 통합

 

 

3. 시기

 

  1980년 10월 천명기 당시 보사부장관의 의료보험통합문제 제기를 시작으로 시발기, 확산기, 그리고 통합기로 이어지는 상호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1) 시발기(1980.10-1988.02)

  시발기의 시작점은 1980년 10월 천명기 보사부장관의 통합문제 제기라고 할 수 있다.
  천명기 보사부장관은 전두환 대통령에게 건강보험의 통합계획을 보고하게 된다. 하지만, 청와대는 조합 간 갈등으로 인한 통치권의 부담 등을 내세워 통합반대 보고서를 작성(1980.11)하기에 이르지만, 천명기장관은 이에 굴하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균형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판단아래 국회 보사위에 단계적 통합방침을 보고하게 된다(보고1981.01). 하지만, 한국노총은 통합추진에 대해 봉급생활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반대 보고서를 발표하기에 이른다(1981.08).
  이러한 양 옹호연합 간 상호작용 속에서 보사부 내에서 건강보험 통합주의세력이 조합주의세력에 의해 축출되는 보사부파동이 발생(1983.03)하여 통합정책은 상당부분 후퇴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여당인 민정당은 의료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국민들을 감싸 안아야 한다며 당정협의에서 전국적인 통합을 요구하기에 이른다(1986.05). 이에 대해 경총은 직장생활자의 피해를 내세워 반대건의문을 채택(1986.08)하기에 이르지만, 경제기획원과 국무총리실은 소득재분배, 사회통합, 관리효율성 등을 내세워 통합을 찬성하는 보고서를 발표하여 반격에 나서게 된다(1986.10).
  이렇게 볼 때, 시발기의 조합주의옹호연합은 청와대, 한국노총, 보사부 내 조합주의세력, 경총, 보수신문 등이고, 통합주의옹호연합은 천명기 보사부장관, 보사부 내 통합주의세력, 민정당, 경제기획원과 국무총리실, 진보적 입장의 신문 등이었는데, 전반적으로 통합을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에 실패하였다는 점 등에서 본 시기에 있어서 힘의 무게중심은 조합주의옹호연합에 있었던 것이다. 
  시발기에서의 정책중개자의 특별한 활동은 발견되지 않았다.
    
2) 확산기(1988.02-1997.11)

  확산기의 시작점은 1988년 2월부터 본격화된 농민단체와 대한의약협회 및 대한병원협회 등 진보의료단체와 시민단체 등이 주도하여 진행되었던 시정운동이다.
  본 시기 역시 양 옹호연합들은 자신들이 탐색한 정책경로를 따라 자신들의 주장을 정책에 반영시키기 위한 정책전략을 펼쳐 나갔다.
  먼저, 건강보험통합정책으로의 진전이 없자 가톨릭농민회, 전국농민협회, 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교회빈민의료협의회, 기독교청년의료인회, 건강사회실현약사협의회 등 농민단체와 진보의료단체 등은 소득재분배 등을 내세우며 1988년 2월부터 시정운동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게 된다. 특히, 이들은 서울종로성당에서 농어민 건강권 확보를 위한 대토론회를 공동으로 개최하여 농어민에 대한 보험료의 과중부담, 보험료 산정기준의 비합리성, 진료권 설정의 비형평성, 그리고 조합방식의 비효율성 등을 제기하며, 건강보험의 통합운영 등을 정부에 강하게 요구하게 된다(1988.04). 더 나아가, 이들의 활동은 1988년 6월 결성된 전국의료보험대책위원회로 구체화된다. 본 단체는 진보의료단체, 농민단체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결성직후인 7월부터 전국 차원의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등 통합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인다.
  또한 건강보험의 조직 및 재정의 완전통합, 의료보호의 건강보험으로의 흡수, 그리고 보험료 누진제 등의 내용을 담은 국민의료보장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전달하기도 하였다(1988.12). 이러한 전략은 당시 야당인 평민당과 민주당에 연결되어, 이들의 주도로 건보통합을 골자로 하는 국민의료보험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것이다(1989.03). 이는 1980년부터 20년 가까이 이어져 온 건강보험통합논쟁이 마무리되는 전환적 사건이 될 뻔 했으나, 노태우대통령이 공공안녕질서와 국가안위를 위태롭게 하는 법안이라는 근거 등을 내세워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건보통합은 무산되기에 이른다(1989.03).
  이렇게 볼 때, 확산기의 조합주의옹호연합에는 노태우대통령 등이, 통합주의옹호연합에는  진보의료단체와 농민단체, 전국의료보험대책위원회, 평민당과 민주당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반적으로 볼 때, 비록 통합을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에는 실패했으나 통합주의옹호연합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강한 압박을 가했다는 점에서, 본 시기에 있어서 힘의 무게중심은 균형에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확산기에 있어 조합주의옹호연합과 통합주의옹호연합의 상호작용에 대한 정책중개자로는 보건복지부장관 자문기구인 국민의료정책심의위원회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료정책심의위원회는 1988년 8월 25일에 국민의료보장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였고, 통합주의와 조합주의를 주장하는 학자와 언론인을 초청하여 토론회를 열어 중개노력을 하였다. 본 공청회, 토론회에서 도시지역 의료보험 확대에 따른 전면통합, 시・도 단위 및 생활권 단위의 광역화, 시・군・구 단위 조합설립 등 다양한 모델에 대한 논의를 비롯해 양 옹호연합 간에 치열한 상호작용이 있었으나, 각자의 의견만 피력했을 뿐 입법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3) 통합기(1997.11-2003.07)

  통합기의 시작점은 1997년 11월 지역건강보험과 공교건강보험의 통합을 담은 국민의료보험법이 국회에서 가결되는 시점이다.
  본 시기 역시 전술한 시기에서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옹호연합들은 자신들이 탐색한 정책경로를 따라 자신들의 주장을 정책에 관철시키기 위한 정책전략을 펼치게 된다.
  먼저, 진보의료단체와 농민단체 등의 지속적인 통합요구로 인해 1997년 11월 18일 지역건강보험과 공교건강보험을 통합한 국민의료보험법이 국회에서 가결됨에 따라 건보통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이를 계기로 15대 대선에 출마한 김대중, 이회창 등 양당 대통령후보는 건보의 완전통합을 선거공약으로 제시하기에 이르고(1997.12), 김대중 후보가 당선 직후 설립한 노사정위원회는 건보전체통합을 합의하게 된다(1998.02). 이러한 통합 움직임에 탄력을 받아 보건복지부는 각계 대표 및 전문가로 구성된 의보통합추진기획단을 구성하게 되고(1998.03), 개정된 국민의료보험법을 근거로 지역의료보험조합과 공교의료보험관리공단의 조직을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으로 하는 1차 조직통합을 시행하게 된다(1998.10).
  하지만 통합주의옹호연합은 이에 머물지 않고 정부에 더욱 더 강한 압박을 가하게 된다. 즉, 경실련, 참여연대 등 대표적 시민단체가 통합운동에 참여하여 직장건강보험까지 통합하는 법률을 조속히 제정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1998.12). 이러한 압박 등에 직면한 국회는 지역, 직장, 공교를 모두 통합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보험법을 가결하였고, 이에 따라 최소한 법규정상으로는 완비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1999.01). 결국, 이를 근거로 보건복지부는 직장의료보험조합과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의 조직을 통합시킴으로써 국민건강보험공단을 발족시키게 되는 2차 조직통합을 시행함으로써 완전한 조직통합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2000.07). 그리고 직장건강보험과 공교건강보험의 재정을 통합시킴으로써 1차 재정통합도 시행하게 된 것이다(2001.01).  
  하지만, 봉급생활자의 부담이 너무 크다며 보수층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를 대변하는 한나라당은 지역건강보험과 직장건강보험만은 재정분리를 해야 한다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고(2001.05), 한국노총ㆍ경총ㆍ교총ㆍ의사협회ㆍ자유시민연대 등 조합주의옹호연합 역시 건강보험의 재정분리를 위한 법 개정을 위한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는 등 반격에 나서게 된다(2001.05). 이러한 반발 움직임에 따라 국회는 지역 및 직장 재정통합을 2003년 7월로 연기(2002.01)하게 되지만, 결국 노무현정부가 들어서면서 연기된 일자에 맞춰 보건복지부는 2차 재정통합, 즉 완전한 재정통합을 실시하게 된다(2003.07). 전체적으로는 4차 통합을 거쳐 건강보험통합정책이 완전한 마무리됨으로써 정책변동의 창은 비로소 닫히게 된다.
  이렇게 볼 때, 통합기의 조합주의옹호연합에는 한나라당ㆍ한국노총ㆍ경총ㆍ교총ㆍ의사협회ㆍ자유시민연대ㆍ국회 등이, 통합주의옹호연합에는 국회ㆍ김대중 후보․이회창 후보, 노사정위원회ㆍ보건복지부ㆍ경실련ㆍ참여연대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반적으로 볼 때, 통합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고 실제로 통합이 시행되었다는 점에서, 본 시기에서의 힘의 무게중심은 통합주의옹호연합으로 역전되었다 하겠다.
  통합기에 있어 양 옹호연합 간 상호작용에 대한 정책중개자는 당정협의회라고 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법이 1999년 2월 8일 공포되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간의 노・노 갈등이 첨예한 양상을 띠었고, 찬반대립이 일어나자 김대중 정부와 여당인 국민회의는 김종필 국무총리 주재로 당정협의회를 열어 당초 2000년 1월 조직통합을 강행하려던 방침에서 한발 후퇴하여 조직통합을 6개월 연기한 2000년 7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1999년 10월 11일 확정․발표하게 된다. 이와 같이 당정협의회는 건강보험의 완전통합을 놓고 조합주의옹호연합과 통합주의옹호연합 간의 조직적 요구표출이 찬반양론으로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황에서 중재안을 내 놓음으로써 일단 갈등을 잠재우는 정책중개자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참고문헌
이용재(2004), “건강보험 재정통합에서의 의회역할”, 사회복지정책, 19.
정사성(2003), “의료보험 정책결정 참여자의 역할과 영향에 관한 연구” 경기대학교 석   사학위논문.
Jones, C. O.(1977),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Public Policy(2nd ed), North Scituate, Mass : Duxbury Press.
연합뉴스<http://www.yonhapnews.co.kr>

 

 

키워드: 건강보험통합정책
저   자: 양승일(ysivd@cyc.ac.kr;ysivd@korea.kr)
작성일: 2014.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