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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세치용학파(經世致用學派)'에 대한 '용어해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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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 경세치용학파(經世致用學派) 행정사
내용

 

경세치용학파

 

개념과 배경
경세치용학파(經世致用學派)란 17세기 이후 조선왕조의 유학사상의 한 조류로서 나타난 실학(實學)의 한 학파를 말한다. 이 학파에 속하는 학자들은 학문연구의 목적을 국가와 사회에 이로우며 민생을 돕는 제도와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들은 학술연구와 국가․사회가 당면한 현실을 긴밀하게 결합시키고 학문적 전적(典籍)의 해석을 수단으로 삼아 자기의 견해를 밝히고 아울러 국가와 사회 현실의 개혁방안과 정책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특색이다. 중국에서는 경세치용의 학문이 16세기  명․청 교체기에 일어났다. 그때의 사상가들은 주자학(송나라의 이학)이 “공리공론”을 일삼고 “근거 없는 말로 소일하며”, “세상의 곤궁을 방치해두고 인심(人心)과 도심(道心)따위를 논함으로써 학문이 공허하다”고 주장하고 실증․실질․실천을 중시하는 실학을 강조하였다. 예컨대 왕부지(王夫之)는 “고금의 공허하면서 교묘한 학설을 모두 폐지하고 실질로 돌아가자”(盡廢古今虛妙之說而返之實)고 주장하고 주지유(朱之瑜)는 “학문을 하는데 에는 마땅히 실질적인 업적이 있어야 하고 실용적이어야 한다”(爲學當有實功有實用)고 말하였다. 조선시대 17세기에 이익(李瀷)은 “경전을 연구하는 것은 치용(致用)하고자 하는 것이니, 경전을 말하면서 천하만사에 시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한갖 글을 읽을 줄 아는 것일 뿐”(窮經將以致用也, 說經而不措於天下萬事, 是徒能讀耳)이라고 하며 세상에 이로운 치용을 추구하는 것을 학문의 중요한 목적으로 삼았다.
경세치용은 조선조 실학의 핵심내용을 이루는 개념이다. 조선조의 실학은 16세기말 임진왜란 이후 기왕의 조선조의 학문과 정치사회에 있어서 정통적 지위를 누리고 있던 주자학의 공리공론을 비판하고 그 자체의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구축하면서 특히 18세기의 영조․정조 때에 전성을 이루었다. 당시에 이러한 학풍이 나타난 것은 조선조 중기 이후에 나타난 두 번의 외침, 정치적 혼란, 삼정의 문란, 관료들의 부정과 부패의 만연, 민생 궁핍의 악순환을 극복하기 위한 학문의 역할을 인식한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실학은 그것을 선도하고 이끌어온 학자들의 주장이나 연구내용에 따라 경세치용학파, 이용후생학파 및 실사구시학파(實事求是學派)로 분류한다(천관우, “유형원 = 실학의 선구”, 「조선실학의 개척자 10인」, (서울: 신구문화사, 1974), p.13).
경세치용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는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과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 등이며 이들은 정치․행정․경제․사회의 문제를 제도와 정책론적 관점에서 해결하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용후생학파는 일명 북학(北學)이라고 하며, 그 대표적인 학자는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1731~1783), 연암(燕岩)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1750~1805) 등이다. 이들은 서경(書經)의 정덕(正德)․이용(利用)․후생(厚生)에서 이용후생을 취하여 민중의 생활향상에 대한 연구에 중점을 두었다. 특히 그들의 관심은 선진기술의 도입과 발전, 상공업의 발달 등에 집중되었다. 끝으로 실사구시학파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대표적인 학자로서 주로 경서, 전고, 금석 등의 고증에 관심을 둔 학파이다. 18세기말부터 19세기초에 활약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같은 학자는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로서 특히 경세치용과 이용후생의 모든 분야에 걸쳐 방대하고 다양한 연구를 하였다.

 

지향하는 특색
경세치용학파가 지향하는 특색을 열거하면 첫째, 국가의 정치․경제․사회․행정의 문제점과 어려움을 개선 혹은 개혁하기 위하여 학문을 이용하는 것이다. 경세치용학파의 학자들은 토지문제, 과거제, 관료제, 조세와 부역, 기타 제도의 개혁적 정책을 제시하는데 관심을 집중하였다. 둘째, 경세치용학파 학자들의 학문의 목적은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들의 가난을 구제하며 사회 및 정치의  모순과 병폐를 치유하고자 하는 이상을 추구하였다. 셋째, 국가의 정치행정의 실공(實功)과 실효(實效)를 강조하였다. 초기의 실학자의 한 사람인 이수광(李晬光)은 실(實)이란 나라를 통치하고 일을 성취하는 근본이 된다고 보고 실용, 실심(實心), 실공, 실효를 크게 강조하였다. 말하자면 국가경영과 행정의 실효성, 효율성이 중요함을 지적한 것이다.

 

개혁 및 정책론
경세치용학파를 대표하는 유형원, 이익, 정약용의 경세치용적 개혁 및 정책론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형원은 그의 저서인 「반계수록」(磻溪隨錄)에서 첫째, 토지제도의 개혁을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한전제(限田制)의 실시를 주장하고 둘째, 과거제를 폐지하고 공거제(貢擧制)를 실시할 것을 제안하였으며 셋째, 인재선발에 있어서 문벌, 적서, 출신지역 차별을 금지하고 능력본위로 할 것을 강조하고 넷째, 정부조직 중에 비변사를 폐지하고 의정부를 최고정책결정기관으로 회복하며, 제조 및 겸직과 체아직(遞兒職)을 폐지하고, 내수사(內需司) 등의 관아를 감축하며 감사와 수령 등의 임기를 개정할 것을 제안하였다. 다섯째, 군포, 환곡 등 가렴잡세(부세)를 폐지하거나 개혁할 것을 주장하고 여섯째, 수공업과 상업을 발전시키는 방안을 제안하였으며 일곱째, 노비세습제의 폐지 등을 주장하였다.
이익은 「성호사설」(星湖僿說)과 「곽우론」(藿憂錄) 등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논의를 펼쳤다. 첫째, 토지공유제도의 기초 위에서 영업전(永業田)제도를 실행할 것  둘째, 과거제를 개혁하여 과천합일제(科薦合一制)로 할 것 셋째, 인재선발에 있어서 적서, 문벌, 지역차별을 금지할 것 넷째, 정부조직 중 의정부 기능의 복구, 대간제도의 개편, 총장사(總章司)라는 인사행정총괄기구의 설치, 군현의 개편 등을 주장하고 다섯째, 군포, 환곡, 전세(田稅) 등의 개혁안을 제시하였으며 여섯째, 농업생산을 증가시키는 방안을 제시하고 일곱째, 노비세습제 폐지를 주장하고 종모법을 배격하였다.
정약용은 「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와 기타 수많은 논문을 통하여 경세치용적 개혁과 정책론을 전개하였다. 첫째, 토지공유제와 농자수전(農者受田)의 원칙을 바탕으로 여전제(閭田制)를 실시할 것을 제안하고 둘째, 과거제에 있어서 대소과(大小科)를 하나로 통합하고 3년대비제(大比制 : 3년에 한번 실시하는 제도)를 고수하며 경과, 알성과, 별시 등의 시행을 금지하고 시험과목을 개편할 것을 주장하였다. 셋째, 인재선발에 있어서 천거제를 강조하고 능력본위의 선발을 제안하였으며 넷째, 관품(官品)을 9품으로 하되 1․2품에만 정․종을 두고 나머지는 없애야 하고, 6조의 정원수는 120인으로 한정하며 각조는 20인으로 하고, 관료인원의 계급간 배정을 위는 적게 하고 아래는 많게 할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대간직의 폐지, 고적제(근무평정제)의 개선, 군현의 분등(分等)과 지방행정구역을 편성하는 기준(군현분예론)을 제시하였다. 다섯째, 군포제와 환상(환자) 개혁방안을 제시하고 부역의 공평한 시행을 논하였다. 여섯째, 농업, 상업 및 공업의 발전에 관한 정책과 광산의 국가경영방안을 제시하였다. 일곱째, 서얼차별금지, 조세와 부역의 공평한 시행, 농자득전의 원칙을 강조하였다. 여덟째, 호적정비, 화폐와 도량형 및 조운에 관한 정책, 진보제(鎭堡制) 와 민보의(民堡議) 등의 국방정책, 과학기술행정의 개선과 황정(荒政)개혁 등을 제안하였다.

 

평가
위와 같은 경세치용의 학문, 다시 말하면 경세치용학파에 속하는 학자들이 이룩한 학문적 업적은 세 가지 면에서 평가할 수 있다. 첫째는 조선조건국이래 200여년 이상 학문과 정치사상계를 지배한 주자학적 유학의 공리공론을 비판하고 학문이 국가사회의 당면문제해결에 기여하는 적실성(relevant)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였다. 둘째는 조선조 중기 이후에 나타난 국가 사회의 정치․행정․경제 및 사회적 문제점과 모순을 실증적으로 연구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개혁방안 및 정책론을 전개하였다. 셋째, 경세치용학파의 학자들이 제안한 개혁방안과 정책론은 당시에 뚜렷하게 시행되지 않았고 이제 시대가 변하였으나 그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까지 국가의 정책과 제도의 개혁을 논의할 때마다 그들이 추구한  학문의 목적과 태도, 그리고 그들이 제안한 개혁 및 정책론은 중요한 역사적 모범을 보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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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 : 윤재풍 (jaipng@uoscc.uos.ac.kr)
작성일 : 200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