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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전자사전
'격물치지(格物致知)'에 대한 '용어해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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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 격물치지(格物致知) 행정사
내용

格物 致知

 

격물 치지는 유가에서 공부하고, 현실을 인식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는 ‘대학’ 책에 처음 소개된 이후, 대부분의 현실 지식인들이 사용했던 방법론이었다. 이 방법은 한국적 과학주의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경험주의적이고, 실증적인 현실 인식론이었다. 이를 토대로 천문 지리, 농상공, 병법들의 과학화를 꾀해 온 우리 선조들이다. 조선 중기에는 理, 氣 논쟁까지 불러일으키면서 수준 높은 철학적 인식 논쟁을 벌렸었다.

 

大學之道
『대학』은 經世 濟民하고자 하는 지식인들의 공부 방법에 대한 내용이다. 경세 제민을 위한 첫걸음으로 어떻게 해야 진리를 터득할 수 있고, 학문은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알려준다. 또 치국 평천하로 가는 순서를 알기 쉽게 제시하고 있다.
우선 진리인 道를 알려면 일과 물들의 근본과 말, 처음과 끝을 상세히 알아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단순히 처음과 끝, 근본과 말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샅샅이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진리를 터득하려면 알고자 하는 사물의 모든 내용을 철저히 살펴 알아야만 한다. 앞 뒤, 처음과 끝을 알면 일의 원인과 결과를 알 수 있고, 물건의 면면을 완벽히 알 수 있다. 그래야만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物有本末하고 事有終始하니, 知所先後 則近道矣리라.”
<설명>  물에는 근본과 말이 있고 일에는 끝과 처음이 있으니, 먼저 한 바와 뒤 한 바를 알면 곧 도가까워지리라.

학문하는 태도에 대한 글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知止而后에 有定이니, 定而后에 能靜하며, 靜而后에 能安하고, 安而后에 能慮하며, 慮而后 에 能得이니라.”(后=後. 慮: 생각 려)

<설명> 그침을 안 후에 정함이 있고, 정함이 있은 후에 능히 고요해 질 수 있으며, 고요해진 후에 능히 편안해 질 수 있고, 편안한 후에 능히 사려 깊을 수 있으며, 사려 깊은 후에 능히 얻을 수 있느니라.

학문을 하려면 우선 산만한 생각들을 버리고 일념으로 한 곳에 집중을 해야 한다. 생각을 하나로 집중하여 (내가 알고자 하는 학문의 목적에 생각을 두고) 흔들림이 없을 때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해 진다. 그리고 모르는 것을 끝까지 붙들고 늘어져 깨우쳐야만 진리를 터득할 수 있다.
공부하는 도중에 생각이 허공을 떠돌고, 이것저것 산만하면 그만큼 성과가 없다. 고요하고 편안해 진다는 말속에는 쓸데없는 상념이 없어야 하는 것과 아울러 잘못된 편견이나 선입견도 없어야 한다는 내용이 동시에 들어 있다. 그렇다고 그냥 편안하기만 해서는 안되고, 알고자 하는 대상에 집착하여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窮究해야 한다. 이렇게 정진할 때 진리, 道를 깨우칠 수 있다.

진리를 터득하고, 이를 토대로 마음과 몸을 닦아,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는 학문과 실행을 하나의 연결 선 상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物格 - 知至 - 意誠 - 心正 - 身修 - 家齊 - 國治 - 天下平”

사물의 이치를 반듯하게 안 연후에 앎이 이루어질 수 있다. 앎이 이루어지고 나면 (마음의 쓰임인) 뜻이 정성스러워지고, 그렇게 되면 결국 마음이 바른 상태가 된다. 그때 비로소 몸이 닦여지고 나아가서 집을 가지런히 할 수 있다.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일은 그 다음이다.
몸을 닦는 일과 사회를 바로잡는 일은 학자로서 동시에 해야 하는 일인데 무엇보다도 전자가 우선이다. 자신의 몸이 잘 닦여져야만 남을 계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몸을 닦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완벽히 아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올바른 지식이 많아지면 질수록 몸가짐을 바르게 할 수 있고, 집안이나 나라의 일을 볼 수 있다. 무엇이 옳은 일인가를 알아야만 그쪽으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다.
유가에서는 올바른 진리, 참된 앎을 이루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다. 그 중에서 자연의 진리보다도 사람과 사회에 대한 진리를 아는 일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수많은 논쟁의 시작과 끝은 ‘사람이란 무엇인가 ’ ‘사람의 본성은 무엇인가’ ‘무엇이 선한 것인가’ 등 사람이라는 주제를 놓고 펼쳐졌다.

 

격물치지의 뜻
1) 격물

朱子의 견해에 따르면 格은 ‘이르다(至)’로 새긴다. 物은 ‘물건 물’로 새기지만 사람 사회의 일(事)과 자연의 물건(物)을 동시에 얘기한다. 그래서 格物은 모든 사물의 근본 이치를 끝까지 탐구해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물에 이르러(卽物) 그 이치를 탐구하는 것(窮理. 窮究)이다.

“ 窮至 事物之理하여 欲 其極處 無不到也라.”
<설명> 사물의 이치를 지극한 곳까지 궁리하여 그 극진한 곳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없게 하고자 한다.

격물을 통해 다음 단계의 치지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다. 어설프게 접근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지점까지 추구해 가야 한다. 격물은 곧 事事 物物의 가장 근원까지 들어가 이치를 탐구하는 행위다.
격물은 경험적인 탐구 행위이다. 卽物 窮理로서 사물에 나아가 그것의 이치를 끝까지 알려는 행위이다. 경험적인 탐구 행위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五感을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개념이나 언어, 도구들이 사용된다. 책상의 높이를 알기 위해 자를 이용하거나 뼘으로 재보는 작업이 경험적인 격물 행위이다. 무게를 달아보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작업이다.
격물은 事物 자체에 내재해 있는 진리를 객관적으로 탐색하려고 한다. 객관적이라는 말은 지식 추구자의 주관이 배제된다는 뜻이다. 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객관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어떤 사물의 이치를 알고자 하는데 주관이 개입한다는 말은 지식 추구자의 욕심이나 편견, 선입견이 들어가거나 그의 역량에 따라 지식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음을 뜻한다. 격물에서는 이러한 위험성을 최대한 없게 하고자 한다.

2) 치지

致에는 이르름(至), 끝까지 미루어 감(推極), 미루어 궁구함(推究), 학을 구함(求學)의 뜻이 들어 있다. 또 知는 알다(knowing. 識)는 뜻이다. 결과물로서의 지식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행위다(양 승무 : 57). 합쳐서 이해하자면 치지는 ‘앎에 이르른다’ ‘알아낸다’ ‘끝까지 알아낸다’ 는 뜻이다.

“ 推極 吾之知識하여 欲 其所知 無不盡也라.”
<설명> 나의 지식을 끝까지 미루어서 알고자 하는 바를 다하지 않음이 없다.

치지는 지금까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토대로, 다시 더 알고 싶은 대상의 이치를 완벽히 알아내고자 하는 행위이다. 연구자의 마음을 최대로 활용하여 知가 다하지 않은 곳이 없도록 힘써 구하는 것이다. 치지를 위해서는 격물이 필수적이다.
격물과 치지는 결국 같은 용어로 보아도 된다. 격물이 곧 치지를 하기 위함이요, 치지를 위해서는 반드시 격물해야 하기 때문이다. 격물 치지는 한 마디로 말해서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완벽히 알아내는 것’이다.
여기서 앎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양 승무 :58-59). 즉 聞見之知와 德性之知다. 문견지지는 경험에 의한 지식으로 경험을 많이 쌓고 많이 얻어들으면 알 수 있는(즉, 博物 多能에 의한) 것이다. 이는 아직 완전한 知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에 비해 덕성지지는 덕성에 의해 내적으로 아는 것으로 인격을 이루는 본질과 관련되어 있다.
현대 용어로 설명하면 견문지지는 오감에 의한 일차적 경험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지식은 아직 완전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 하면 사람들의 접근 방법에 따라 앎의 결과가 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참 진리의 발견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연구자들은 문견지지를 놓고 다시금 곰곰이 연구하여 참된 진리를 발견해 가야 한다. 사람들 중에는 단 한번에 직접 진리를 꿰뚫어 아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수많은 사고 과정을 통해 진리에 접근해 간다. 같은 사람의 경우에도 때마다 사정은 달라진다.
덕성지지도 견문지지와 마찬가지로 견문과 경험을 토대로 한다. 견문지지와 다른 것은 사물의 객관적인 질과 양 등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한 차원 더 나아가서 견문과 경험을 초월한 진리를 터득하여 얻어진다.

3) 物格과 知至

격물이 주체인 사람이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그 극처에 이르고자 함이라면, 물격은 사물의 이치를 그 극진한 곳까지 완전히 알아내서 더 이상 궁구해야 할 바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율곡 전서. 32권. 어록 하. 出於沙溪語錄). 마찬가지로 지지도 사물의 이치가 다 밝혀져서 극처에 다다른 상태로서 미진한 부분이 없다는 뜻이다.
사람의 심령은 모두 知를 가지고 있는데, 사람에 따라 知에 명암이 있어서 理의 극처에 이르고 이르지 못함이 있다. 이는 사물의 이치가 사람들 앞에 스스로 알아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物理가 그 극진한 상태까지 밝혀지고, 아울러 知가 지극함에 이르며, 뜻 意가 誠스러움을 다하고, 마음 心이 바른 상태에 이르른 자는 성인이다. 格致 誠正하되 그 극진한 데까지 이르지 못한 사람은 군자요, 격치가 안되어서 격치하고자 노력하고 성정이 안되어서 성정하고자 애쓰는 사람은 학자이다.”(율곡 전서. 9권. 答成浩原)

 

격물 치지의 주체: 心
儒家에서는 격물치지의 주체인 心에 대해 많은 논쟁을 전개했었다. 심의 존재 의미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격물 치지의 의미가 매우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1) 虛靈 知覺의 존재

마음 심이란 사람들의 모든 의식 작용을 관장하는 것으로, 우리의 심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고 듣고 만질 수 없는 것(=虛한 존재)이지만, 신통방통한 능력(=靈적 능력)을 가지고서, 앎(知)과 깨달음(覺)의 활동을 하는 것이다. 참으로 묘한 존재로서 사람들의 제반 활동을 주재한다.

2) 能知의 존재
사람들의 마음은 스스로 온갖 사물의 이치를 알아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즉 능지의 존재로서, 다른 무생물이나 인지 대상으로서의 사물, 지적 능력이 낮은 동물들과 구별된다. 사람들 속에서도 능지의 수준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능지의 역량을 갖춘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心之靈明으로 事物之理를 아는 것(知)이 인식 활동이다.”

마음은 밖의 사물이 있는 그대로 모사되는 정도의 수동적 존재만이 아니다. 능동적으로 사물에 작용하면서 잣대를 들이대고 이해력을 높이려고 하는 존재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존 개념과 이론들을 토대로 현상에 접근한다.

3) 具 衆理의 존재

마음은 그 안에 모든 사물의 진리를 가지고 있다. 사물의 진리(物理=物性), 사람들의 진리(人性)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객관적인 실재에 관한 이치(=所以然之理)와 사람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도리(=所當然之理)를 함께 갖추고 있다. 텅 빈 그 마음은 태극이나 無極의 존재처럼 온갖 진리를 함축하고 있는 마르지 않는 진리의 샘이다.
다만 스스로 갖추고 있는 진리를 깨달아 알아보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지적 능력에 차이가 있다.
현대의 과학주의적 사고에 의하면 수많은 경험을 통해 개념과 이론들을 마음속에 집어넣음으로서 이것이 축적되어 그 사람의 지적 능력이 성장해 간다고 본다. 많은 공부를 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 지적 역량이 높아진다고 본다. 그렇지만 전통의 心學에서는 마음 스스로 이미 모든 진리를 갖추고 있다고 본다. 다만 그것을 구현하는 시차와 수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격물 치지의 대상: 理

마음이 격물 치지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는 참된 이치(=眞理), 道理이다. 길 道, 이치 理는 같은 의미로 보아도 좋다. 또 물의 이치와 구별해서 사람과 관련된 이치를 말할 때 性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성은 밖으로 표출된 情이나 욕심과는 달리 순선한 상태의 진리다.
리는 음양의 動靜에 의해 나타난다. 한번 음이 되고, 한번 양이 되는 소이(所以)가 도요, 리다. 천지 음양의 조화이다.
진리는 마음에 대해 所知의 상태에 있다. 마음의 인지 활동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진리는 기본적으로 사물의 실재하는 이치로 보아야 하지만, 인성의 경우에는 마땅히 그렇게 되어있어야만 하는 당연의 이치, 도덕이어야만 한다. 이 부분에서 性卽理說, 人心 道心論 등의 논쟁이 생겨난다.
격물 치지의 대상을 일반론적으로 말하면 위와 같이 도, 리이지만 사람들의 인성 부분, 사회 현상으로 돌아오면 禮가 그 대상이 된다는 견해도 있다(조 기빈 1996:390-392). 공자가 수없이 주장한 克己 復禮(극기 복례)의 사상은 모든 사람들이 예의 상태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이때 예란 사람 사회 속에서 가장 진리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격물 치지의 방법
1) 居敬

경은 ‘삼가할 경’으로 경계하여 조심하고 勤愼하는 것이다. 마음을 하나로 모아 추구하는 대상에 집중하여 흔들리지 않는 것(=主一之謂 敬 無適之謂 一)을 말한다. 밖으로 달려나가려는 마음을 몸 안에 수렴하여, 마음을 바로잡아 中하고 正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리를 꿰뚫어 볼 수 있고, 관조할 수 있으며, 자신 속에 내재해있는 性·理와 마음을 일치시킬 수 있다.
정 이천은 마음의 사특해짐을 막아(閑邪), 성스러운 상태를 유지하는 것(誠自存)에서부터 공부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용모를 가다듬고 사려를 바르게 하여야만(動容貌  正思慮) 경이 생기고 마음이 전일해 질 수 있다고 한다.(誠: 진실로 성, 참되게 할 성, 참 성. 공평 무사하고 순일한 상태를 가리킴)

“閑邪면 則 誠自存이라. ··· 惟是 動容貌 正思慮하면 則自然生敬하니 敬是主一이라. 主一하면 則旣不之東 又不之西하고, 如此則 只是中하게 된다. 旣不之此 又不之彼하고, 如此則只是內存하리라. 此則 自然天理明하리라. 學者 須是將 敬以直內하여 涵養此意해야 한다. 直內是本이라.” (二程全書. 遺書. 제15)

<설명> 사특함을 막으면 곧 성스러움이 스스로 있게 된다. 오직 용모를 가다듬고 사려를 바르게 하면 자연히 경이 생겨나니 경은 (마음을) 하나로 함이다. 하나로 하면 즉 (마음이) 동으로 가고 또 서로 가는 일이 없다. 이와 같은 즉 다만 중할 수 있다. 이미 (마음이) 이리도 가지 않고 저리도 가지 않으면 안을 보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즉 자연히 천리가 밝아지리라. 학자는 모름지기 장차 경으로써 안을 곧게 하여 이 뜻을 함양해야 한다. 안을 곧게 하는 것으로 기본을 삼아야 한다.      

마음을 곧게 하기 위해 閑邪, 存誠, 居敬해야 하는데, 일단 생기기 시작한 경을 끊임없이 받아들여 길러가야(=涵養) 한다. 함양을 통해 本心에 접근하고, 더욱 淸淨 貞定하여, 점점 더 ‘於穆不已之體’에 접근하여, 實然之心을 道心으로 전환해 가야한다. 그리하여 최종 목적지는 치지에 이를 수 있고, 도덕을 갖추게 된다.

2) 窮理

거경에 의해 함양을 하는 목적은 결국 관심 대상 사물의 이치를 알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認知(knowing) 작용인데 반드시 물에 격해서, 뜻을 모아(集義), 끝까지 궁리해야 한다. 格物 窮理하여야만 知에 이를 수 있다.
궁리는 허령 지각한 마음을 이용하여 사물의 是非를 확실히 가려내는 일이다. 知의 능력은 내 안에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인데 사람들에 따라서는 이것을 잘 구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이것이 賢愚의 차이다. 지의 능력을 잘 활용하여 사물의 이치를 잘 알 수 있을 때 군자, 성인의 위치로 접근해 간다.
인지 작용은 사물에 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음 바깥 사물의 세계는 수시로 변화하여 인지자에게 항상 진실만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인지자가 어느 것이 참된 이치인 지를 알기 위해서는 刻苦(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격물을 통해 일차적인 문견 지지가 이루어지고 나면 다음 단계의 덕성 지지를 얻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오감을 가지고 사물에 접하여 얻는 지식들은 매우 한계가 있다. 각 사람들이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얻는 지식은 진실이라기보다는 많은 경우 잘못된 편견이다. 그 속에서 참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다시금 냉정한 마음의 인지 작용이 필요하다. 끝까지 推極(추극)하고, 궁리하며, 反躬(반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物至知知 然後에 好惡形焉하니, 好惡 無節於內 하면 知誘於外하여 不能反躬하리니 天理 滅矣리라. 夫物之感人無窮 하고 而人之好惡無節한 則是物至而人化物也라. 人化物也者는 滅天理而窮人欲也라.”(禮記注疏. 樂記. 제 19.)

<설명> 물에 이르러 (견문의) 지를 안 연후에 좋고 싫음이 나타나니, 좋고 싫음이 마음  속에서 절제함이 없으면 앎이 바깥 사물에 유혹되어 능히 몸에 돌이킬 수 없으니 천리가 끊어지리라. 대저 외물이 사람들을 유혹함이 끝이 없고 사람들의 좋고 싫음이 절제가 없은 즉 이는 사물이 이르렀으나 사람들이 사물을 변화시킨 것이다. 사람들이 사물을 변화시켰다는 것은 천리를 끊고 사람 욕심을 다한 것이다.

몸에 돌이킨다는 반궁은 문견 지지의 내용이 참된 것인가를 끊임없이 스스로 묻고 답하며 참 이치의 세계로 들어가는 행위다. 자신의 편견, 잘못된 지식, 잘못된 판단에 의해 천리가 가려져 있지는 않는 가를 살피는 행위다. 자기가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린 것일 수도 있다는 반성을 해가면서 시비를 끝까지 가려내려는 노력이다. 그리하여 豁然貫通(활연관통)의 경지에 다다라 진리를 얻게 된다. 이것이 덕성 지지를 얻는 노력이다.
덕성 지지는 한 차원 높은 인지 작용이지만 항상 格物, 卽物, 至於物의 상태를 토대로 하고 있다. 현실 초월의 진리를 얻는 작업도 격물로부터 출발한다.
그렇지만 이 부분에서 마음이 항상 격물을 전제로만 진리를 얻게 되느냐에 대해 이론이 분분하다. 그 이유는 마음 작용을 통해 마음속에 애초부터 가지고 있던 性理를 깨우치는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修己와 治人
수기는 자기의 앎을 충실히 하여 언행과 사려가 진리에 일치하도록 하는 것이고, 치인은 앞서 수기가 이루어진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계도하는 것이다. 수기가 먼저냐 치인이 나중이냐의 논란, 수기와 치인은 동시 작업이냐의 주장들이 있어 왔다. 남을 계도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먼저 바른 도의 상태에 있어야만 하는데, 사람들의 득도 작업은 어느 한 순간에 끝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득도, 즉 덕을 갖추게 되면 그때부터는 다른 후배들을 계도하러 나서야만 한다는 것이 치인을 늦출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다.

1) 진리의 밝은 모습을 알아낸다(明 明德)

앞서 논의한 격물 치지는 자연의 진리, 인성의 진리를 깨우치는 방법이다. 진리는 스스로 작용하면서 온갖 세상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사람들이 보기에 매우 은미하여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명한 사람들은 진리의 모습을 잘 밝혀 내지만 인욕으로 오염된 많은 사람들은 그 본 모습을 보지 못한다.
사물 하나 하나에 밀착해 진리의 모습을 아는 것에서부터 사람들의 수기가 시작된다. 이치를 정확히 알면은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할 수 있다. 갈 방향을 정하고 나면 쓸데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이 없어지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편안하게 자리하고는 깊이깊이 생각함으로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할 수 있다.
몸이 닦였다는 것은 마음이 진리의 세계에 편안히 머물면서, 반듯하게 처신하는 것이다. 사물이 만들어내는 그때그때의 현상을 대하면서 언제나 진리의 쪽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수기가 이루어진 사람이다. 수기가 완벽히 이루어진 사람은 성인이요, 그 가까이 가 있는 사람은 군자며, 무단히 노력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바로 잡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학자다. 현실에 바쁜 일반 사람들은 진리 탐구의 노력을 할 새가 없어 학자나 군자들이 해놓은 결과를 교육을 통해 받아들여야 한다.

2) 도에 맞는 중용의 행동

덕을 닦은 군자는 항상 도의 세계에 머물러 중용을 실천해야 한다. 中庸에서 중은 치우침이 없고 지나침이 없는 것으로 천하의 바른 도를 일컫고, 용은 떳떳하고 변함이 없는 것으로 천하의 정해진 이치다(중용. 주자 주). 중용의 실천은 곧 진리의 도를 현실에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진리의 도는 잠시라도 몸에서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서 덕을 닦은 군자는 항상 조심하여, 남이 보고 있을 때는 당연히 남의 본보기로 행동하고, 홀로 있을 때도 도가 몸에서 떨어지지 않게 삼가 한다. 이런 노력은 스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뜻이 제멋대로 흐르는 것을 막는 것이다.
깨달은 진리를 가지고 그렇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교육하고, 이끌어나가야 하는 것이 깨달은 사람의 사명이다. 實踐 躬行의 자세는 격물 수기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진리가 아닌 반 중용의 상태에 빠져 있는 국민들을 진리의 세계로 이끌어야 한다.

3) 집안을 다스림(齊家)

자신의 몸을 닦은 군자가 처음으로 부닥치는 사회는 바로 가족이다. 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으로 사회가 갖추고 있는 모든 요소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부부, 부자, 형제, 주인과 노복, 집, 재물, 수입과 지출, 도둑 경비, 교육, 孝悌, 예절 등은 모두 일반 세계의 축소판이다. 가족은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의 조직체로 볼 수 있다. 어느 사회를 알고자 할 때는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 하나의 가족들을 살펴보면 된다. 그것들이 모여 전체 사회를 이루기 때문이다.
집안을 잘 건사할 수 있어야 그 밖으로 연장된 사회를 잘 다스릴 수 있다. 부부 사이의 평등과 역할 분담, 부자 · 형제 사이의 상하 관계와 상호 작용, 적절한 구조와 기능을 갖춘 집, 가족이라는 존재의 생명력을 위해 필요한 수입과 지출, 안전 보장, 집안 내에서의 질서와 공동체 생활 등이 득도의 군자가 최초로 마주치는 현실이다. 이 가정을 평화롭게 잘 관리하기 위해서 군자는 모두가 납득 가능한 진리의 모습으로 존재해야 한다.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 설정도 정당한 도리에 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구체적인 진리는 격물 치지를 통해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부부 관계가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기 전에 결혼을 하면 어줍잖은 가족이 형성되고, 부자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 지 아는 게 없는 사람은 아들 교육을 어디까지 시켜야 할 지  망설일 수밖에 없다. 집안의 수지를 다룰 수 없는 사람은 더 큰 회계 처리를 할 수 없다.
이처럼 집안을 다스리는 일은 아무나 아무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집안을 먼저 다스려야 한다는 말을 ‘마누라 바람나는 것을 확실히 막아야 한다’ ‘마누라는 확실히 휘어잡아야 한다’ ‘집안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말에 꼼짝 못하게 해야 한다’ ‘자식들은 부모님 말씀에 항상 순종해야 한다’는 정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가족을 평안히 다스리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이 각각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중용과 정도를 모르면 곤란한 일이다.

4) 나라를 잘 다스림(治國)

여기서 나라는 큰 사회와 동격으로 보아도 좋다. 지역 사회, 국가 사회 등을 모두 합친 개념이라 여겨도 좋다.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수기를 이룬 뒤에 집안을 평화롭게 건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집안 다스림조차도 안 된 사람들은 더 큰 사회, 더 큰 조직을 관장할 역량이 없다. 그 속에서 다른 많은 사람들과 공존하며 살아갈 수가 없다.
치국의 도는 격물로부터 알아낸 지식들이다. 홍수 조절하는 능력에서부터 전쟁을 치르는 요령까지 모두 격물치지로부터 얻을 수 있다. 제가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지식이 치국의 밑거름이 된다. 격물 없이 제가를 하거나, 격물 없이 치국을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또 제가 없이 치국으로 건너뛰기도 어렵다. 물론 있을 수는 있지만 그건 엉터리 제가요, 치국이 될 뿐이다.
일정한 정도의 격물, 수기를 이룬 사람들이 치국의 현장으로 등장하는데 이때도 항상 격물치지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백성들을 진리에 눈뜨게 하기 위해서는(즉, 新民), 당사자 역시 끊임없이 공부하여 날로 새롭게 자신을 성장시켜가야 한다. 이것이 日新 日日新 又日新의 정신이다.
수기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현실 구제가 급한 만큼 적당한 시기에 관료로, 지도자로, 교육자로 등단한 사람들은 지속적인 공부가 필수다. 그리하여 새롭게 전개되는 현상을 이해하고, 사건에 대처해 나갈 능력이 생긴다. 수많은 속인들은 자기 잇속만 챙기기 바쁘고, 당장 눈앞의 즐거움만 쫓는데 비해 수기를 이룬 지성인들은 항상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서 그 곳에 머무르고자 애쓴다.
마음이 가는 지향점이 항상 참되기 때문에 자신을 속이는 일이 없고, 뭇 사람들이 바라보는 바가 되기 때문에 태도를 함부로 할 수 없다. 자신을 속이는 일이 없다는 것은 진리의 세계에 발맞추려는 의지를 약화시키지 않음이다. 진리의 정도에 맞춰 치국을 하기 때문에 비겁하거나 부패하지 않다.
덕이 덜 갖춰진 사람들은 친애함이나, 천히 여기거나 미워함, 지나치게 두렵게 여기거나 공경함, 가엾고 슬프게 여김, 거만하고 게으름 등에 빠져들기 쉽다. 그로 인해 정도의 치국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덕 있는 군자는 항상 본 모습을 꿰뚫어 알기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군자의 행동은 온 국민들이 바라보고 본받는다. 그래서 그의 행동을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 하고, 그가 집안에서 하는 孝 悌 忠 信을 흉내 내면 따라 한다. 이것이 絜矩之道(혈구지도)이다. 혈구란 건축에서 쓰이는 木骨, 거푸집의 의미로 본보기라는 뜻이다. 남을 ‘이래라, 저리 해라 !’ 가르치는 것 이전에 몸소 실천하면서 다른 사람이 보고 배우게 만들어야 한다. 거동이 항시 진리의 법에 어긋나지 아니하여, 一擧手 一投足이 그대로 진리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부부 사이의 관계는 동료 사회, 동업자끼리 하는 행동의 표본이 되고, 부자 · 형제 관계는 상관과 부하 직원 사이 관계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 군자의 가족은 온 국민들의 본보기가 된다. 이것이 제가가 치국에 우선하는 이유다. 어버이를 공경하고 형님과 어른을 존중하며, 자식을 사랑하고 동생을 애뜻하게 여김은 인성의 진리다. 이런 가족 내에서의 관계가 사회 속으로 연장된다.


참고문헌
大學
양 승무. (1987) 주자의 격물치지론에 대한 연구. 유교학회.「유교 사상 연구」 2집. 51-104.
栗谷 全書
二程 全書
조 기빈. (1996). 반 논어」조 남호. 신 정근 역. 예문 서원.

 

저  자 : 이대희 (nulbo@daisy.kwangwoon.ac.kr)
작성일 : 2003. 2.